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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여성노동을 말하다

우리는 불법노동자 | Workers

우리는 불법노동자 | Workers

감독 호세 루이스 바예/ 제작국가멕시코, 독일/ 제작년도 2013/ 포맷 DCP/ 상영시간 120'/ 장르 드라마/ 색상 color


리디아와 그녀의 동료 엘사 (사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30년 전 아이를 잃고 헤어진 라파엘과 리디아. 엘살바도르 출신인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멕시코에서 꾸려나간다. 라파엘은 미국으로 넘어가려다가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시민권을 준다는 말에 참전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후 필립스에서 계속 청소 노동자로 살아왔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애사심이 강한 라파엘은 슈퍼에서 낯 모르는 이에게 필립스 전구를 권하고 다른 전구 진열대에도 필립스 전구를 쌓아 놓는다. 정년퇴직 날 퇴직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모처럼 새 구두를 사 신고 이사와 대면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 “당신은 불법체류자이지만 회사가 은혜를 베풀어 신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퇴직금은 줄 수 없다. 성실히 일해 왔음을 인정하여 계속 일하라.”는 대답이었다. 새 구두는 다시 더렵혀진다. 라파엘은 복수를 시작한다.

프린세스에게 석양을 보여주는 리디아 (사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리디아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대저택에서 입주 가정관리사로 일한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나이든 여성과 그의 반려견이 리디아의 고용주이다. 리디아는 24시간 호출벨이 울리는 방에서 대기하며 묵묵히 열심히 일한다. 고용주의 사망으로 은퇴를 기대했지만 유언은 리디아와 그의 동료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고용주의 반려견 프린세스가 자연사할 때까지 지금의 고용인들이 한 팀이 되어 지금처럼 돌봐주면 유산을 나누어주겠다는 것이다. 리디아와 동료들은 프린세스의 자연사를 앞당길 방법을 강구한다.

영화는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조차 없는 나이든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고발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법적 분쟁으로 가는 정석적인 투쟁의 방식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의 노동자 저항을 이야기한다. 라파엘도 리디아도 불법체류 노동자이며, 리디아의 경우 불법체류가 아니다 하더라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는 가사노동자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멕시코는 OECD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주당평균 45시간, 연평균 2,317시간. 하지만 임금은 연평균 9,885달러로 미국의 1/5에 불과하다. 

홀로 노동하는 라파엘(사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

라파엘과 리디아 역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저임금을 받고 평생을 일해 왔을 것이다. 주변에 함께할 동료도 없이 혼자서 소외된 노동을 지속하는 라파엘. 낯 모르는 이에게까지 필립스 전구를 권했던 애사심과 자긍심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다. 그 무엇도 결정할 권한이 없었던 라파엘은 결국은 마침표조차 강요에 의해 찍는다. 하지만 그 결과를 불러온 것을 라파엘 자신이었다. 리디아는 오랜 기간 24시간 대기의 삶을 살아온 탓인지 고용주가 죽고난 후 벨이 울리지 않아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 한다. 프린세스가 자연사(?)한 후 이들이 드는 축배는 승소 판결문같은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어찌됐든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난한 노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리디아와 라파엘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살았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래본다.

영화 중간 중간 계속되는 인상적인 롱 테이크는 이들의 노동이 가진 지난한 시간의 무게가 실린 듯 느껴진다. 


2014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