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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문화활동/2013 : 여성노동문화제

당나귀 귀 이야기

당나귀귀
2013.10.31 클럽제스

장미칼, 꿈꾸는 모험소년, 들꽃, 민들레님의 모습이 차례차례 화면에 보였다. 그녀들은 자신의 노동 이력을 나열하고 있다. 세대에 따라 노동의 경험도 다양했다. 영상이 끝나고 출연진들이 무대에 올랐다. 20대에서 5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이 삶과 노동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당나귀귀 토크쇼가 시작된 것이다.

 

주제1. 노동과 임금

영어학원 강사, 빵집 판매원, 사무직, 모델하우스, 커피집 아르바이트 등 그녀 스스로도 얼마나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써놓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는 20대 ‘장미칼’님은 해외취업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교육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동안 모아둔 돈을 축내며 지내고 있다. 30대 ‘꿈꾸는 모험소년’님은 비정규직을 벗어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재의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말이 빌미가 되어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책 세일즈를 하다 빚더미에 앉았다는 40대 ‘들꽃’님은 지금은 파견노동자로 병원에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현재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50대 ‘민들레’님은 11살 때 13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공장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것이 노동의 시작이었다.

세대에 따라 노동의 경험은 달랐다.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노동에 대한 착취의 경험이었다. 세월은 바뀌었고 예전보다는 분명히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구조적인 틀은 우리의 발목을 잡아 우리를 계속 ‘을’로 구조화 시키고 있었다. 고용구조가 구조화된 미로가 되어가고 있고, 고용관계 또한 복잡해져 가고 있다. 법과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과정은 더욱 견고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을 전문가로 참여한 노회찬 님은 삼중‘을’이라 이야기 했다. 노동자여서 ‘을’, 여성이어서 ‘을’, 비정규직이여서 ‘을’이라는 이야기다. 삼중‘을’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있다. 시간당 임금이 싸니 일을 많이 시키고,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해 시간당 임금을 적게 책정하고 있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 지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삼중‘을’들이 삼중고를 겪는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항상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이중 어느 하나가 나아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시간당 임금을 높이는 것과도 연동되어 있다. 이런 것이 좋아진다는 것은 불안정했던 일자리에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삼중고는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

 

 

주제2. 직장내 성희롱 · 성추행

장미칼님이 모델하우스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손님들이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장미칼님의 몸을 눈으로 훑는다. 또 회식날 시간이 늦어 가려고 하는 장미칼님에게 택시비를 줄테니 한시간만 있다가라, 돈을 얼마 줄테니 조금 더 있다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희롱 문제는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다. 권력관계이기 때문에 내 일자리가 걸린 상황에서 쉽게 저항 할 수 없다. 그래서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더 악질적이다. 성희롱에서 중요한 문제는 갑이 을을 어떻게 보고 노동환경을 조성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성희롱은 우리 회사에서는 용인되지 않음을 공표한다면 아마도 지금의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성희롱 없는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운동이 필요하다.

 

주제3. 나에게 일이란

‘장미칼’님은 될 수 있으면 안하고 싶은 것을 일이라고 했다. 살아가는 이유라고 답을 한 ‘꿈꾸는 모험소년’님은 일 때문에 정말 불행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재미를 찾고 있었다. 일은 자유라고 말한 ‘들꽃’님은 오히려 가정에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이야기 한다. ‘민들레’님은 일이 무섭지 않고 좋다고 한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고통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또 일은 자유이고, 무섭지 않다고 한다. 놀이는 일처럼 하고 일은 놀이처럼 하라는 말도 있지만 힘든데도 일을 하고 일 속에서 보람을 찾고 일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을 왜 성토하면서 해야 할까? 일은 즐겁고 좋은 것이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들은 걱정되고 마지못해 하는 것이 되었다.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하는데 일하는 시간이 고통 그 자체가 되어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것을 바꿔내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통해 차별받지 않고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이 있어야 했는데 그동안 우리는 땀만 흘렸다. 갑과 을의 구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서로의 위치가 존중 될 수 있는 그런 노동을 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들도 일자리에 대해 당당히 요구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당사자들도 노력해야 한다.  

1시간 30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껴질 만큼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청중들을 집중시켰다. 그녀들의 이야기였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장미칼’님의 노동은 의미 있는 이력이 되지 못한다. ‘꿈꾸는 모험소년’님에겐 정규직 전환이 입을 막았고 또 족쇄가 되었다. 파견직인 ‘들꽃’님은 갑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민들레’님의 노동은 근로기준법이 노동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당나귀귀 토크쇼 이후에도 그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문제들은 내가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의 노력이 부족해 생기는 문제도 아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모두 공감했다. 이제 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을’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함께 연대하고 그 구조에 맞서야 하겠다. 토크쇼의 마지막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을’인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박수로 마무리 했다.